문화유산활용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1) 윤주희
권진규 아틀리에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① 윤주희


2022년 작가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글입니다.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uZ-l3QjvXyc)


 

세상의 모든 의지에 관하여

 

저는 세상의 모든 의지에 관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소든 그리고 자연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위치든, 그것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존재들은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제를 하고, 그들의 의지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2019년도에 했던 제 개인전 제목이 <의지의 의지의 의지>였거든요. 어떤 거대한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이 의지를 달성하고 싶은데 조건이 안돼서 상황이 되지 못해서 내가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또 의지를 해서, 지금의 어떤 현재를 지탱하고 있는 그런 여러 가지 존재들에 대한 작업으로 설치, 영상, 퍼포먼스 다양한 매체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최성균 작가와 ‘컨템포로컬’이라는 아티스트 듀오로도 작업을 하고, 같이 금천구 시흥동에 ‘범일운수종점Tiger1’ 이라는 공간도 운영하고 있어요. 2016년에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집 앞에 미술계를 만들어 보자 해서, 천정고가 높은 공간을 찾아서 자연스럽게 공간을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 작업을 하는 창작가로서, 콜렉티브 공동작업자로서, 기획자로서 창작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다른 작가들에게 기획자로서 제안을 하고  그들의 눈으로 시각화되는 작품들을 보면서 제 사적인 이야기가 객관화되는 것이 매력적인 지점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방향을 잡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개인 작업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담론들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아틀리에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물리적으로 작업할 공간이 없었어요. 레지던시를 전전하고 있을 때 공모사업을 우연하게 발견을 했어요. 그런데 내셔널트러스트라는 단체 정보도 잘 찾아지지 않고, 맥락도 안 잡히더라고요. 권진규 작가님의 실제 아틀리에 공간을 같이 작업의 공간으로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지점이어서 지원을 했죠. 

지금도 기억이 나는 점은 인터뷰 하는 공간이에요. 신발을 벗고 인터뷰를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고, 그 이후로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다소곳이 앉아서 심사라기보다는 어떤 인터뷰를 한 것 같은 분위기가 인상 깊었어요. 

 

이전에는 동료 작가들이 있는 레지던시 공간이었는데 여기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온전히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만큼 독특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만 자라서 마당이라는 개념이나 사계절의 변화가 입는 옷에 따라서만 경험을 했었지, 자연이나 뭔가 제가 보는 걸로 경험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 공간에서 계절이 변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게 사실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없는데 오동나무가 예전에 있었거든요. 그 오동나무가 여기를 다 덮을 만큼 되었을 때 ‘이게 여름이구나’라고 느꼈었고, 위에서 은행이 사정없이 떨어질 때 ‘이러면 가을이 되었구나’, 눈이 온 날은 나가기가 힘들어서 아예 자발적으로 고립을 한 적도 있거든요. 그때 내가 과연 서울에 있는 게 맞을까 할 정도로 그 해 눈이 정말 많이 왔던 해였는데, 그것도 겨울을 강원도처럼 제대로 느꼈었던 경험이라서 사계절이 다 기억에 남아요. 마당에서 개미들을 봤던 것도 기억이 나고요. 

 

 

아틀리에에 있는 동안 개인전을 했는데 개인전이 끝나고 그 작업들을 다 싸서 힘겹게 계단을 오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권진규 작가가 예전에 명동에서 개인전을 하고 리어카로 작품을 끌고 올라올 때 상황이 오버랩핑 되더라고요. 그때 같이 술 한 잔 했었으면 정말 할 얘기가 많았겠다. 그 마음이 어땠는지 딱 알았거든요.

정말 모든 역량을 다해서 작업을 하고 기대를 했을텐데, 개인전 작업들을 고스란히 다시 들고 왔을 때의 그 허함, 이런 것들을 권진규 작가를 생각하며 독백처럼 했던 것 같아요. 술 대신 커피를 내리면서요.

그 이전에는 뭔가 장소에 대해서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어떤 변화에 힘겨워 하는 모습들 그리고 거기에서 사라진 것들에 관심을 두고 포커스를 맞췄다고 한다면, 같은 상황이더라도 지금 이게 오래되고 사실은 동시대에 맞지 않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런 공간이나 장소들을 하나의 의지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그 이전에는 살아있는 것들의 의지라고 했다고 한다면, 레지던시 이후에서부터는 ‘공간이나 장소들도 의지를 가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접근할 수 있었던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리허설, 젊음, 드로잉

 

이곳에 있으면서 권진규 작가나 이 공간에 관련된 작업을 꼭 하나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모델을 두고 드로잉이나 조소 작업을 많이 남기셨잖아요. 세상을 통해 보지 못했던 젊음을 모델들과 같이 긴 시간을 보내면서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한 작업이 <리허설, 젊음, 드로잉>이라는 퍼포먼스를 영상작업화 한 것입니다. 권진규 작가가 젊은 모델과 함께 같이 그 모델을 두고 작업했던 그 상황을 모티브로 작업을 했던 것이고, 그 안에서 나오는 대화들을 통해서 50년 전에 이 공간에 있었던 권진규 작가, 그리고 그 50년 후에 제가 이 공간에 있으면서 겪게 되었던 여러 상황들, 이런 것들을 대화 안에서 녹아들도록 했던 작업들이었습니다.

영상에서 모델이 지었던 포즈들은 작가님 작업들 중에서 모티브를 잡아서 했는데, 단순한 포즈라 할지라도 그 포즈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필요하거든요. 당시에 아틀리에에서 작업에만 몰두했던 소극적으로만 보였던 작가의 모습도 사실은 상당히 큰 의지가 필요했던 그런 예술 태도가 아니었을까, 돌아가시고 5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아무것도 변화된 게 없는 것 같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 떨릴 정도로 많이 노력을 하고 있는 동시대의  노력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것들이 모델이 한 포즈를 유지하는 상황과 연결되지 않을까 해서 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틀리에, 앞으로 아틀리에

 

아틀리에까지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권진규 작가의 열렬한 팬들이 대부분이시기 때문에, 항상 뭔가 의문의 1패를 당한 듯 한 느낌이랄까요?(웃음) 권진규 작가는 여기 없고 살아있는 나는 여기 있는데. 사람들은 돌아가신 작가는 보는데 살아있는 나는 보지 못하는 느낌. 저는 1기였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고, 여기까지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제 이후에 들어온 다른 창작공간 작가들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얘기 하는 것을 보니까, ‘이 분이 돌아가시긴 했지만 아직도 이 분 집이구나’. 아니면 ‘동시대 작가들도 볼 수 있는 그런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작가 혼자만은 아닌 것 같고 뭔가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됐어요. 

가장 좋은 것은 권진규 아틀리에를 보려고 여기 왔다가 우리 작가들도 알게 되는 것이고, 또 우리를 보러 왔다가 권진규 작가도 알게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겠죠. 서로의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  ―  윤주희

 

작가, 기획자, 엄마 … 제가 여러 가지 위치에 놓이긴 하지만 가장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작가 윤주희’인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예술품을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지금 예술가라고 해서 이게 평생토록 보장받는 위치도 아닌 것 같고요. 계속 매일 아침 ‘내가 예술가가 맞을까’라고 항상 그 태도가 중요한 것 같거든요. 내가 만들었다고 모든 것이 작품이 되지 않는 것처럼, 예술가라는 그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고민도 필요한 것 같고요.

그래서 자꾸 그 ‘의지’라는 말을 붙이는 것 일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쉽게 불릴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그 말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작가 윤주희’라고 어디서 소개를 받았을 때, ‘내가 소개를 받아도 될 만큼 열심히 작업을 열심히 했나? 열심히 무언가를 했나?’라고 항상 자문을 하려고 하고 있거든요. 제가 아마 예술가가 아니었다면 그 ‘의지’라는 말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요. 

https://juheeyoun.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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