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전지인
2022년 작가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글입니다.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Bfz4eYS5yY)
나의 첫 레지던시
처음에는 영상과 이미지 언어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그러한 작업이 어렵고 답답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 입체 스튜디오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되었고, 매체를 확장하며 입체, 설치, 미술과 언어를 폭넓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는 그러한 배움을 보다 넓힐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설치 방식이나 언어를 가지고 작업하는 방식들이 조금 더 확장되었던 시기입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선배 작가가 머물던 공간에서 작업을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동안 영상으로 다뤘던 작품들은 근현대사에 남아있는 일상적 공간을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본다든가 하는 작업이 많았습니다. 그것들도 어떻게 보면 정체성의 문제, 아니면 축약된 근현대사 안에서의 문제점 등, 여러 가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진규 아틀리에 이후 작가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일상적인 일들을 조금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작업들도 제 일상에서 거리가 먼 작업은 아니었지만, 거기에서 조금 더 밀착된 문제점들, 혹은 조금 더 면밀하게 보아야 하는 일들 쪽으로 가까워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재료의 사용들도 조금 더 다양해지고 새로워졌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에 혼자 머물면서 스스로 시간을 분배해 작업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유롭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흘러가는 시간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대학가 주변 먹자골목이 있는 번화가와 가까이 있는데도 한두 블록 안쪽의 골목길에 들어오면 정말 조용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운 좋게도 10개월이 넘게 아틀리에에 있으며 저만의 리듬을 만들어 작업을 하고 시간을 분배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다른 레지던시로 옮겼을 때도 그러한 리듬을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었습니다.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는 공간에서 첫 레지던시를 시작해서인지 작가의 사회적인 역할 같은 부분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선배 작가 권진규
권진규 아틀리에는 하나의 벽을 두고 분리된 공간에 젊은 작가의 작업실과 선배 작가인 권진규 선생님의 공간이 맞닿아있습니다. 시간과 거리, 온도 등 그런 것을 느끼면서 권진규라는 작가를 다시 보았습니다. 사실 저에게 ‘권진규’는 소문이 무성하게 많아 제대로 볼 수 없는 작가였습니다. ‘비운의 작가’, ‘천재 작가’와 같은 수식어를 걷어내고 권진규가 어떤 식으로 작업에 몰입했고 어떤 결과물을 냈는지, 그 이후에 일상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초점을 맞춰보려 했습니다. 저도 입주했을 때는 더 젊은 작가였기에, 작가의 길을 간다는 게 어떤 것일까 깊게 고민하면서 권진규 작가의 일상, 작업실, 삶에 대해 좀 더 집중하였습니다. ‘권진규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이 작업실을 어떻게 유지했을까’, ‘작업을 하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고쳐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작업 중에 하기도 했었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 오픈스튜디오에서 보여줬던 여러 작업들은 권진규라는 선배 작가를 오마주하는 작업들이 많았습니다. 2013년, 2014년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권진규가 지나다니던 두 개의 문을 가지고 작업했던 <벽을 위한 기념비>, 창작 공간 뒤쪽 축대의 회칠 된 벽 뒤에 구멍을 내어 벽에서 빛이 새어 나오게 했던 설치 작업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권진규에게 덧대어진 이미지들을 파헤쳐서 제대로 권진규를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으로 한 오마주 작업입니다. 공간이나 사람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그 안에 덧대어진 이미지들을 들어내어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한 평도 안 되는 방에서 쪽잠을 주무셨던 공간의 면적을 마당에 펼쳐서 빛이 반사되게 하는 작업 같은 경우는 쪽잠을 자며 흙이 마르기를 기다리거나 잠시 휴식하며 그 안에서 공유했던 부분들을 확장하여 연결 지은 작업입니다.
<카드>
<카드>라는 작업은 ‘두 집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작품입니다. 권진규 선생님도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제 주변에도 생을 빨리 마감한 젊은 작가들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살이라는 부분들이 저한테는 무겁게 다가왔었습니다. 현존하는 젊은 작가들이 작업을 하면서 받은 상처의 말들을 받아 단어별로 쪼개어 스티커 형식으로 조합할 수 있는 카드 양식을 만들었습니다. 부정적인 말이나 비평으로 들었던 말들이 관객들의 손에 이끌려 다시 재조합되면서 새로운 문장으로 탄생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느냐 극복하지 못하느냐 이런 문제를 넘어서 어떤 식으로 다시 치환될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시간과 마음이 스며드는 공간
제가 관객으로 만날 수 있는 분들은 미술을 많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았었는데 여기 권진규 아틀리에에 있으면서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을 때의 경험이 재미있었습니다. 스스럼없이 작품을 봤을 때 든 생각을 표현했고, “뭐가 너무 좋다”, “이건 이해가 안 된다”라는 직접적인 피드백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오픈스튜디오 때, 쓱 한번 보시고 편지를 쭉 써주신다거나 했는데, 그 편지의 내용 중에 ‘이래서 작업을 하나 보다’, 하는 내용을 보면서 약간의 위로를 받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써 주신 편지들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고, 가끔 작업하다 잘 풀리지 않을 때는 한 번씩 읽어보곤 합니다.
그분들이 이곳에 와서 자원봉사자로 시간을 보내시다가 다시 본인의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마음가짐이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나이를 먹고 그분들도 나이테가 더 늘어났을 텐데, 2013년도에 제가 만났던 자원봉사자분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한 공간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여러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고마운 기증으로 공간이 유지되고 있고 그것이 시민들의 관심으로 정착되고, 매해 이어져 10년을 넘기고 있습니다. 여기를 거쳐 간 후, 개인적으로 무엇을(보존에 대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공간을 알리는 데는, 입소문이 나거나, 어떤 유명한 행사가 진행된다면 효과가 클 것입니다. 제가 더 좋은 작업을 해서 많이 알려지면 이 공간을 알리고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빨리 공간이 알려지고 많이 유명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보다는, 좀 더 조용하게 자리 잡고, 휴지에 물이 스며들 듯 그렇게 스며드는 곳이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조용하게 알려지고 우리 곁에 머물 듯 스며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 동선동에 권진규라는 조각가가 썼던, 보존되어 잘 되어 있는 작업실을 찾아와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이런 활동들이 조금 더 일반 사람들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갔으면 좋겠고, 작은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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