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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5) 이민하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5) 이민하

권진규 아틀리에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⑤ 이민하


2022년 작가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글입니다.
(인터뷰 영상: 
https://youtu.be/WlrLAStYNpc)



학창시절에는 종교학이나 사회학 등 인문학에 매료되었는데, 한편으로는 손으로 만드는 것도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일들을 계속 연결해 나가다보니 작업을 하고 있게 되었네요. 영상 작품인 <아남네시스(2017)>를 계기로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서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2019년 말에 임신 8개월 차에 촬영한 <통로(2021)> 작업을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동반 성장하고 있는 핵심출연자가 작품에 등장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종이에 연필이나 먹을 가지고 필사 작업을 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로 촛불집회가 있던 날, 미디어로 촛불의 불꽃이 흔들리는 이미지나 연기 같은 것들을 보면서 ‘왜 전쟁이나 시위의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우리한테 다가오지 않는 것일까’, ‘현장의 가장 중요한 핵심 사항, 공기, 특히 냄새와 같은 후각적인 요소가 없어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광우병 사태에 대해서 한창 리서치를 하다가 ‘가죽’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생겼고, 가죽을 인두로 지져서 필사를 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태너리’라고 해서 무두질을 하는 공장들이 있었지만, 제가 사용하는 염색이나 화학적인 처리가 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의 가죽은 소가죽 외에는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본 업체를 통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으로는 야생 상태의 사슴 가죽이 있습니다. 북해도의 한 단체에서 생태계 파괴로 인해 개체수가 증가된 사슴이 사냥되고 있는데, 가죽도 고기도 사용되지 않는 그들의 죽음에 의미를 찾아보려는 취지로 한시적으로 생산한 재료입니다. 


가죽을 인두로 태워서 무언가를 필사할 때, 미세하게 ‘치익’하는 소리가 나면서 인간의 피부랑 유사한 단백질 구조라서, 살이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나거든요. 우리의 시지각 정보는 굉장히 고차원적으로 읽기 위한 정보입니다. 텍스트랑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후각은 훨씬 더 원초적인 감각인 것 같아요. 그런 원초적인 감각을 어떻게 하면 전시장 안에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라고 생각해서, 제가 퍼포머로 계속 필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거나, 저 대신 필사를 하는 장치, 예를 들면 구형 플로터를 개조해서 계속 전시장에서 태우게 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버티컬 플로터라는 기계가 X, Y축으로 작동하면서 레이저로 프로그래밍 된 문구 - 예를 들어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태운다던지 합니다. 관객은 탈 때 나는 연기와 냄새 같은 것을 전시장에서 일부나마 체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체험된 공감각적인 정보로 인해서 무언가 다른 기억 같은 것들을 관객에게 환기시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권진규 아틀리에에서 한 워크숍이 기억에 남습니다. 각자의 기원을 한 문장 정도로 압축해서 작은 가죽 팔찌에 직접 새겨보는 워크숍인데, 냄새에 대한 참가자들의 반응이나 이런 것들이 신선했어요. 나이대별로도 반응이 다르고, 참여하신 분들도 많이 좋아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저는 2013년에 일본에서 귀국한 이후로 어디에 지원해도 잘 되지 않던 시기가 있었는데, 작업의 다음 단계도 보이지 않았던 심리적으로 위축된 시기였습니다. 우연히 공모요강을 보게 되어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 면접 때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 작업이 미약하게나마 연기가 발생하고, 뭔가를 태우는 것이 작업의 핵심입니다만, 심사위원 한 분이 “그래도 문화재인데 그런게 괜찮나”하고 걱정을 하셨어요. 여기가 특별한 공간이다 보니까 화기 사용을 못해서 취사 같은 것이 안되지요. 그런 관점에서 인두 사용에 대해 걱정을 하셨는데 다른 선생님이 “이런 공예용 인두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과 다르다”면서 저를 대변해 주셨거든요. 그 선생님께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분이 아니었으면 못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제가 작업해서 나오는 정도의 연기는 화재감지 센서에도 걸릴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네요. 



사색이 쌓이는 시간


권진규 아틀리에의 특징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작가 혼자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고독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저는 리서치를 할 때, 책이나 자료들을 많이 보는 편이거든요. 이곳에서 손을 움직여서 만들거나 하는 것보다도, 책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저의 독서 공간 같은 역할을 해주었어요. 아틀리에에서 시작한 콩댐한 2합지에 연필로 필사하는 작업은 당시에는 막연한 상태로 진행했지만, 점차 생각이 정리되면서 2017년도에는 가리봉 벌집을 테마로 기획한 ‘낮고 높고 좁은 방’ 전시 등에서 완성된 형태가 발표됩니다. 한국형 불안정 주거공간에 대한 연구는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의 국제교환 프로그램으로 독일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에 갔을 때, 확장되어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굉장히 섬세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리서치를 하는 홀로코스트나 인간의 잔혹성과 관련된 자료들을 보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원래 무서운 것이 없는 편이고, 그런 특이한 주제에 전념할 수 있는 약간은 신경줄이 무딘 사람입니다. 안쪽 공간에서 권진규 선생님이 생을 마감하셨는데, 그런 것도 죽음의 현장이라고 하는 것이 끔찍하거나 귀신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생을 마감하셨던 공간과 가까이 있다’는 것이 저한테는 특별하게 다가왔어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입주한 성과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 해에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것들도 있겠지만, 저에게 권진규 아틀리에는 그 영향이 몇 년 뒤에 발견되는, 묵혀야 맛이 있는 된장 같은, 그런 느낌의 공간입니다. 재료가 무겁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날라야 하거나 하는 경우에는, 이 공간까지 올라오는 것도 쉽지 않아서 불편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서울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차가 안되는 불편함도 있지요. 그러나 그런 불편함은 사소한 일인 것 같아요. 이곳에 입주해서 얻게 된 경험이나 생각이 내면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니까,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길


권진규 선생님의 작품은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매료되었는데, 정확히 무엇에 매료되었는지는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작업공간이나 생활공간을 보면서 작가로서 그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고독하게 자기 길을 꾸준히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런 것들에 제가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크게 주목받는 입장도 아니었고, 시류를 잘 따라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던 시절도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진규 선생님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해야지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권진규 선생님도 당시에는 인정을 못 받으셨지만, 독보적인 미적 감각을 가지고 작업을 하셨으니까요. 

저는 주로 가죽을 쓰다 보니까 주변의 작가들이 가죽의 형태를 굳히려면 FRP 등의 신소재를 쓰라고 조언해 줍니다. 물론 작가가 인정을 받게 돼서 미술 시장에서 거래가 왕성하게 되거나 미술관에 소장이 되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스스로 환경 파괴적인 물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내 몸을 해칠 수도 있는 소재를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가죽을 캐스팅해서 강도를 높이는데, 옻칠을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옻칠은 2007년과 2018년에도 잠깐 썼었는데, 올해 본격적으로 3D 프린팅한 오브제 위에 옻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죽에 옻칠을 해서 강도를 높이는 것은 갑옷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제작 과정인데, 무척 수고스러운 작업입니다. 권진규 선생님의 건칠 작업은 일반적인 옻칠 기법과는 다른 방향이기는 하나, 특별한 소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선생님의 건칠 작업을 보면서 느끼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나 봅니다.

권진규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면,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 많습니다. 선생님의 소조 작업은 인체가 베이스가 된 것이 많은데, 그 작품을 들여다보면 이분이 정말 인간의 어떤 본질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 같거든요. 물론 제가 관심있는 지점은 인간성의 바닥, 심연, 어두운 측면 이런 것이긴 합니다만, 권진규 선생님은 어떤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관심이 있으셨을지 궁금합니다. 

 

해마다 작가 한 명만 이 공간에 입주할 수 있기 때문에 아틀리에 창작공간 다른 기수 작가님들과 교류할 일이 없거든요. 다들 바쁘고 쉽지는 않겠지만 그룹전 같은 걸 해보면 좋겠습니다. 권진규 선생님 또는, 권진규 아틀리에라고 하는 주제로, 그 주제를 각자가 해석하는 방식으로 본인의 매체나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서요. 한 가지 주제에 맞춰서 뭔가 새로운 작업을 하는 전시를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의 화두는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다 본 홀로코스트와 같은 거대한 역사를 저의 개인적 서사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인류애를 담은 제3자적 증언의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고, 이것을 통한 전지구적 소수자 연대의 희망도 생각해 왔습니다. 어려운 문제지만 출산을 계기로 연결점을 찾기 위한 시도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 하려는 작업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는 상황을 어떻게 분리시킬까 라는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이미지가 필사된 기도문도 텍스트고, 참가자들의 나레이션이나 사연이 담긴 이야기도 텍스트 거든요. 그리고 작년에 처음 시도했던 4채널 사운드 작업을 지속해 보려고 합니다. 소리의 잔상과 LED를 이용한 눈의 잔상이 만나서, 관객한테 어떤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의 실험을 내년에도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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