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8) 김남현
권진규 아틀리에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⑧ 김남현
2019년 봄. 지금 기억엔 정신없는 두어 해를 보내고 지칠 때쯤 권진규 아틀리에 입주하게 되었었다. 동선동의 좁은 골목길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마지막에 있는 곳이었다. 아틀리에는 조용하고 아늑했다. 도시를 벗어난 듯 새소리만 들렸다. 입주작가 한 명만 사용하는 작업실은 여느 작가 레지던시와는 다르게 고요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좋은 장소였다. 바삐 지내던 그때는 마치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아틀리에의 입주작가 공간에는 책상과 의자만이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신호가 약하다고 들었다. 잘됐다 싶었다. 여기 지내는 시간만은 인터넷이나 다른 자극 없이 온전히 내 시간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었다. 며칠을 적응 핑계로 빈 작업실에 아무것도 없이 몸만 오가며 멍하게 있었다. 작은 화단의 잡초들과 마당의 햇빛, 바람, 담을 넘나드는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의 일상과는 다른 너무도 잔잔한 풍경이었다. 사회와 분리된 것만 같은 공간은 여유롭고 평온했다.
그러다가 이 공간은 권진규 작가님이 지내실 때도 이런 분위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 손수 지으셨다고 들은 보존되고 있는 작업실이 보였다. 벽돌과 시멘트, 두꺼운 나무로 지어진 멋부리지 않은 투박하고 실용적인 건물이었다. 내겐 먼저 짓는 과정이 눈에 그려졌다. 땅을 다진 뒤 트럭이나 리어카가 들어올 수 없는 저 좁고 긴 계단 골목으로 무거운 건축재료들을 들고 나르는 권진규 작가님을 상상하였다. 아찔하였다. 고되게 작업실을 다 지은 후에도 테라코타 작업을 위해 수시로 흙덩이와 가마 땔 장작을 지고 올라오시는 모습, 좁은 방에 잠시 몸을 누인 뒤 일어나 고뇌하며 흙 작업을 하시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곳은 평온한 공간이 아닌 치열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더운 여름날 작업할 재료를 배낭에 채우고 출발해 아틀리에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땀에 젖었다. 힘들어하다가도 권진규 작가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쉽게 넘길 수 있었다. 작업실에 도착해 모기 몇 마리 잡고 땀을 식힌 뒤 책상에 앉아 종이에 스케치를 끄적거리며 작업을 시작했다. 평소에 조각 작업할 때는 시끄러운 전동공구들을 주로 썼었는데 아틀리에에서는 그 고요한 분위기를 망치는 소음을 내긴 싫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손만으로도 다룰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작고 다양한 에스키스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의 거창한 계획과는 달랐지만 새로운 공간과 상황은 오히려 유연한 생각들을 가져다주었다. 그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당시 대부분은 정리하지 못한 생각과 미완의 에스키스들이지만 그것들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작업의 토대가 되었다. 어느 하나 집중 못 하는 어수선한 요즘 아틀리에의 시간이 생각난다. 차분했지만 가슴 안은 역동적이었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