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활용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10) 고사리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10) 고사리

권진규 아틀리에 창작공간 작가 인터뷰 

⑩ 고사리 

 
 

첫걸음

 

시간을 더듬어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긴 계단을 올라 숨이 차오를 때쯤 권진규 아틀리에의 문을 열고 들어섭니다. 햇살이 부딪히며 반짝이는 공간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은 몸을 맡기고, 새들은 활기차게 지저귀며, 거미와 개미들은 분주합니다. 성큼 자란 풀들은 목을 축여줄 이를 반기며, 이 모든 순간이 차오르던 숨 대신 채워집니다. 그리고 이내 평안을 얻습니다.

저는 생의 순환과정에서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들이 오랜 시간 삶에 축적되어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들을 살펴봅니다. 그것들의 사이에서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많은 것들과 마주하며, 살아있는 시간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 시선은 권진규 아틀리에에서도 이어져 이곳이 지닌 아름답고 따뜻하고 품으로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8개월간 아틀리에에서 먹고, 자고, 쉬고, 작업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꼈습니다. 외부의 시간과는 다르게 흐르는 이곳의 시간을 유심히 관찰하며 내부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평온한 안정감들이 몸속에 흘러 들어가 다시 몸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권진규 아틀리에의 화단은 자생하고 있던 식물들과 잡초들이 뒤엉켜있었습니다. 아틀리에 가는 날이면 소매부터 걷어 올려 잡초를 솎아주고, 엉킨 가지들을 잘라주고, 자리가 난 곳에는 야생화를 심거나, 씨앗을 뿌려 새로운 식물들을 발아시켰습니다. 봄에 흘린 땀만큼 여름이 다가 올수록 화단의 모습은 변모해 갔습니다. 작은 나팔꽃이 하나둘 넝쿨을 타고 오르고, 권진규 선생님께서 생전에 좋아하셨다는 해바라기도 활짝 꽃을 피웠고, 무성히 자라던 옥잠화는 몇 뿌리 캐어 집으로 가져와 아틀리에의 생을 이어와 옮겨심어 보았습니다. 이곳저곳에서 구해온 야생화들인 바위취, 제비꽃, 메발톱, 좁쌀풀, 가는잎향유는 이미 꽃이 피고져 이듬해에 덜어진 씨앗이 싹을 틔우길 고대해 보고, 시멘트 틈 사이에서 자란 망초, 고들빼기, 깨풀, 개미취, 수까치깨, 비름들도 물을 주며 살펴봅니다. 아틀리에를 오가는 바람과 새들이 옮긴 이름 모를 식물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그해 제게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세월을 저어하지 않는 만남

 

아틀리에 마당에 들어서면 <초사람>들이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초사람>은 아틀리에 화단에 핀 잡초를 수거해, 손으로 조물조물 뭉쳐서 눈사람 형태의 풀로 만든 모습을 가진 자연 조형물입니다. 잡초는 숲속의 강한 식물들 사이에서 경쟁에 밀려 자라지 못하기에 길가나 밭, 혹은 개간된 땅이나 메워진 바다 위처럼 인간이 만들어낸 곳에서 자라납니다. 겨울에 눈이라는 자연이 찾아오면 동심으로 돌아가 눈사람을 만들듯, 아틀리에 화단에 절로 자란 잡초라는 자연과 만나 동심 어린 관계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아틀리에 작업실 내부로 들어서면 화단에서 <건져 올린 돌>들이 손님들을 반겼습니다. 화단을 정비하며 만난 돌을 물에 불려 솔로 깨끗이 씻어내 해가 잘 드는 마당 한 편에서 바짝 말린 뒤, 돌이 가진 모양, 흔적, 틈, 무늬, 색상들을 추적해가면서 돌에 직접 드로잉을 했습니다.

어디에서 와 아틀리에 화단에서 만나게 된 것일까 하며, 작은 돌이 가진 세월을 저어하지 않는 만남이 되길 바랬고, 드로잉을 살피는 손님들의 시간으로 유심히 이어가길 바랬습니다. 오픈스튜디오 기간 오래 머문 한 원로의 손님께서 저에게 “미물을 사랑하고 있군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오랫동안 깊게 남았습니다.

권진규 선생님께 몇 달 동안 고요한 이곳을 요란한 저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어요. 아틀리에 어디에서든 저를 지켜봐 주시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선생님께 대답 없을 말을 건네던 시간이 제게 든든한 마음을 품게 해주었어요. 감사함 잊지 않고 굳건히 살아가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 홈페이지 
www.gosari.net


작가와의 인터뷰 영상
(인터뷰 1편: https://youtu.be/g6Gf19QG38k)
(인터뷰 2편: https://youtu.be/WIktTAfdd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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