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아틀리에' 답사 후기
8월 23일의 화창한 토요일. 시민문화유산 3호인 권진규 아틀리에 정기 개방일을 맞아
방문객들이 성신여대입구역 앞에 모두 모였다. 방문객 중에는 나와 함께 시민유산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역에서 권진규 아틀리에까지는 불과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더운 날씨와
가파른 계단의 이어짐 속에 모두들 땀을 이마에 주렁주렁 달고서야 아틀리에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현대 조각사의 커다란 획을 그은 한 조각가의 삶이 동선동의 높다란
자락에서 완성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나로서는 뭔가 숙연해지는 느낌부터 다가왔다.
권진규 아틀리에 외부 전경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담하고도 담담한 아틀리에의 전경이 펼쳐졌다. 내부의 건물은
故 권진규 선생이 작업 활동을 했던 아틀리에 공간과 가족의 살림채로 사용되었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는 살림채의 마루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힌 후, 권진규 선생의 일생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렸을 당시 부유했던 권진규 선생의 집안 이야기에서부터
선생의 손재주가 남달랐다는 점, 미술의 꿈을 안고 일본을 찾아 떠났다가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는 점은 훗날 권진규 선생의 삶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 중요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유학 가운데 그가 얻은 근현대조각의 세계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끌어내고자한 권진규 선생의 노력과 열정이 내가 앉아있는 바로 이 자그마한 작업실의
공간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은 이야기 전개의 흥미를 더해 주었다.
선생의 작업실 안의 풍경은 1960~70년대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정지해있는 듯하였다. 작업실
좌측의 작업대에는 살포시 먼지가 쌓인 선풍기와 술병, 선생님이 사용하셨을 크고 작은 작업
도구들이 놓여있었고, 우측으로는 작품을 직접 구워내기 위한 가마와 우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업실 한 가운데 놓여진 습작을 보니 혼을 사르며 작품을 만들다가, 결국엔 자신의 목숨마저
태워버린 한 조각가의 열정이 아련히 전해져왔다.
권진규 아틀리에 외부 전경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담하고도 담담한 아틀리에의 전경이 펼쳐졌다. 내부의 건물은
故 권진규 선생이 작업 활동을 했던 아틀리에 공간과 가족의 살림채로 사용되었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는 살림채의 마루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힌 후, 권진규 선생의 일생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렸을 당시 부유했던 권진규 선생의 집안 이야기에서부터
선생의 손재주가 남달랐다는 점, 미술의 꿈을 안고 일본을 찾아 떠났다가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는 점은 훗날 권진규 선생의 삶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 중요한 시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유학 가운데 그가 얻은 근현대조각의 세계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끌어내고자한 권진규 선생의 노력과 열정이 내가 앉아있는 바로 이 자그마한 작업실의
공간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은 이야기 전개의 흥미를 더해 주었다.
선생의 작업실 안의 풍경은 1960~70년대 당시의 모습 그대로 정지해있는 듯하였다. 작업실
좌측의 작업대에는 살포시 먼지가 쌓인 선풍기와 술병, 선생님이 사용하셨을 크고 작은 작업
도구들이 놓여있었고, 우측으로는 작품을 직접 구워내기 위한 가마와 우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업실 한 가운데 놓여진 습작을 보니 혼을 사르며 작품을 만들다가, 결국엔 자신의 목숨마저
태워버린 한 조각가의 열정이 아련히 전해져왔다.
권진규 아틀리에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 (자원활동가 정수정 님 제공)
전체적으로 권진규 아틀리에서는 평상시에 자원봉사를 하는 ‘최순우 옛집’과는 다소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생활 속 근대한옥과 예술활동을 위한 작업실이 다른 느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두 장소가 서로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 집은
그 주인을 닮아간다고 했던가, 옛집에선 최순우 선생님의 미학이 배어있는 그 특유의 고즈넉한
멋이 집안에서부터 외부로 발산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는 화려하진
않아도 수수하고 맑은 기운이 세상과 통하는 듯도 했다.
권진규 아틀리에 설명을 듣고 있는 관람객 (자원활동가 정수정 님 제공)
아틀리에에서는 작업실 안으로 주변의 기운이 다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듯이, 한 예술가의
집념과 열정이 작업실 안에 처절히 서려있었다. 권진규 선생은 자신의 작품을 잉태해내는
그 작업실 안으로 짙은 열정과 관심을 몽땅 쏟은 것만 같았다. 좁고 어두운 작업공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권진규 선생의 삶이 어떠했는지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란 이름하에 시민의 힘과 노력으로 보존하고 있는 권진규 아틀리에.
근현대 예술의 역사를 남기고 간 예술가의 영혼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공간 속에 시민들의
애정과 열정이 더해져 미래세대의 값진 유산으로 거듭나길 희망하면서, 시민유산 자원 활동가로서
나 스스로의 자부심과 다짐을 다져본다.
- 자원활동가 이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