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최순우 옛집 '작은 축제' 행사 후기
- 3일 간의 축제이야기
* 글쓴이는 방순영, 사진 찍은 이는 정수정 님 입니다.
축제 기간 동안 자원활동으로 수고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최순우 옛집에 걸려 있는 소방울의 모습(최순우 선생 소장품)
최순우 옛집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우리문화 안내서를 저술한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이 말년을 보낸 집입니다. 2002년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이곳을 매입하여 2004년에는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이름을 달고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개소식 이후에는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이곳의 관할을 맡아 선생의 삶과 미학을 담은 기념관으로 관리ㆍ운영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모두 크고 웅장한 건물 속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유물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박물관의 분위기가 만연했던 지날 날 동안 우리들 스스로는 다가가기 어려운 박물관의 문턱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소위 눈요기를 할 수 있는 유물들이 없다 할지라도 박물관의 설립취지와 그 안의 정신과 가치관이 살아 숨 쉰다면 박물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순우 옛집은 이곳을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한국미를 몸소 실천하였던 선생의 삶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시민들의 아늑한 쉼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그러한 박물관의 의미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최순우 옛집은 2004년 개관 이후 문화강좌ㆍ음악회ㆍ낭독회ㆍ전시회를 열어 시민문화를 활성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2008년 여름에도 지난 노력의 맥을 이어 문화강좌ㆍ답사ㆍ체험행사를 모두 아우르는 “작은 축제”를 열었습니다. “작은 축제”는 말 그대로 크고 화려한 축제는 아니지만, 한국미의 산실인 옛집 속에서 우리 시민들이 담고 있는 정서와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것들을 어떻게 아름답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의 자리였습니다.
축제 첫째 날(5/23 금)
간송과 혜곡, 한국미술사의 원류에서 바라보다.
-이세용 강연 <간송 선생과 혜곡 선생>
*이세용 선생님은 문화유산 전문 답사팀 '문화탐방 뿌리와 샘'을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끊임없이 공부하시면서, 역사의 현장에 우리를 안내해주십니다. 출판일을 하시던 시절, 혜곡 최순우 선생님과 왕래하시면서 책을 출판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축제 첫날에는 간송선생과 혜곡선생을 주제로 한 이세용 선생님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좌에는 2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주었는데 그 모습이 조촐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옛집축제만의 조용함과 소박한 방식이 아닌가 이해를 했습니다. 이세용 선생님은 일전에 간송미술관에서 처음 뵌 적이 있었는데, 오늘 저는 이 분이 가지고 있는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과 철학을 시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그 멋스러움에 감동했습니다.
이세용 선생님
이날은 한국의 미술사를 큰 맥락 속에서 지난 19~20세기의 한국의 화백들과 미술사학자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이룩된 간송 전형필 선생과 혜곡 최순우 선생의 삶을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이세용 선생님은 간송 전형필 선생이 21살의 나이에 위창 오세창을 만나 영혼을 빼앗기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글 쓰던 혜곡 최순우가 우현 고유섭 선생님을 만나 박물관 일을 시작한 것과 불경에 관심있던 현재 간송의 최완수 실장이 최순우 선생님의 신수대장경을 보게 해준다는 “꾐”에 넘어가 간송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젊고 지성인이었던 그들의 청춘은 그렇게 산파역할을 해준 스승을 만나 한국미술사의 큰 맥으로 성장하고 영향력을 낳게 된 것입니다.
자원활동 안내 시나리오에서 봤던 고유섭ㆍ황수영 선생, 서점의 책 속에서 만났던 오주석,ㆍ유홍준 선생 모두 별개의 인물이 아닌 지난날 한국미술사학자들의 계보를 통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계보를 확인하는 가운데 우리는 현재의 간송미술관과 옛집을 만나고 있으니 성북동에 있는 두 위인이 대하는 제 자신의 마음이 너무 벅차서 어려움에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한편에서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집 자원활동가인 우리 젊은이들은 이곳을 1주일에 3시간씩 드나들면서 과연 얼만큼 영혼을 빼앗길만한 사람과 아름다움과 또한 그 무엇을 만나고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솟구치기도 했습니다.
강연을 듣고 있는 시민들
일전에 저는 최순우 선생님이 건축가 김수근을 데리고 한국 곳곳의 사찰과 문화유적지를 돌아다니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순우 선생은 절대 그 공간의 아름다움을 일일이 지적해주지 않고 그저 김수근이 그 미학을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함께 해주다 그 맥을 짚으면 답사장소를 바꾸셨던 글을 읽고 혜곡 선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아름다움을 깨우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줄 아는냐고 묻습니다. 얼마나걸릴까요? 20년은 기본이라고 합니다. 우리문화의 중요성을 함축하고 있는 한국화에 관한 이야기는 크게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정작 모르고 있는 실정이 바로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강연을 함께 들으신 분들이 나이도 지긋하고 어느정도 열의가 있으신 분들 같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서 어린 제가 새로움에 눈을 동그렇게 뜰 때마다 이들사이의 공감대에서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 이세용 선생님에게 한국의 미학에 대해 일일이 가르침을 받았으니 조금은 그 아름다움의 일깨움에 다가선 것이 아닌가 하는 뿌듯함을 느껴봅니다.
강연이 끝나고 한 참여자의 종이를 보았는데 한국미술사학의 계보가 빼곡이 적혀있었습니다. 200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의 아름다움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꽃이 만연하게 피는 5월의 날,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은 오원 장승업 전을 열고, 최순우 옛집은 축제를 마련하여 시민들이 한국의 문화를 함께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시민문화유산 1호인 옛집 보존 활동과 함께 간송 선생이 남겨둔 한국미술문화의 자취를 살펴보는 저로서는 크나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축제 둘째 날(5/24 토)
권진규의 삶과 철학의 산실, 그의 아틀리에를 찾다.
- 최 열 선생님과 함께하는 권진규 아틀리에 답사
*최 열 선생님은 한국근대미술사의 흐름을 재집성하신 분으로, 현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이사를 맡고 계십니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시면서 권진규 선생의 삶과 미학에 대한 글을 쓰셨는데, 이번 강연에서는 권진규 아틀리에라는 역사적 현장에서 그 내용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강연을 듣고 있는 답사 일행
권진규 아틀리에 정화 활동과 개소식, 심포지움... 그리고 오늘 답사강연 프로그램으로 저는 또 한번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권진규 아뜰리에와 인연을 잘 맺어 가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 최열 선생님의 제자들과 경찰대 학생들, 그리고 여러 시민 분들이 아틀리에에 모여앉아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저는 벽에 기대어서 선생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을 읽어낼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열어두었습니다.
이날 강연에서는 권진규 선생의 약력을 중심으로 권진규라는 작가의 역사적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습니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미술 공부에 대한 끈을 놓치 않고 일본 유학을 떠났던 것, 그리고 다시 한번 고국의 꿈을 그리면서 이 곳 동선동에 터를 잡아 예술의 정신을 몸소 불살랐던 것. 좌절과 고뇌의 끝에 이 아틀리에라는 자그마한 작업실 속에서 삶을 마감했던 그의 모습.
저는 강연 도중에 눈을 감고 그냥 선생님의 말씀을 음악처럼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보존ㆍ보수된 그의 아틀리에에 앉아서 이 공간의 아우라와 지금 권진규 선생의 예술적 삶의 의의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또한, 보존과 평가가 진행 중인 작고한 근대 예술가의 삶의 터전 속에서 그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는 활동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봅니다.
권진규 아틀리에를 들어가보니, 당시 선생이 남겨놓은 유품들이 고스란히 제자리를 찾아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잔뜩 물감이 묻어 있는 붓들, 빚는 도중에 굳어버린 흙덩이, 삐걱대는 의자, 당장이라도 끓어오를 듯한 화로의 모습은 마치 지금이라도 당장 권진규 선생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살아있는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권진규의 삶과 혼을 다시금 불러일으킨 시민들의 노력, 그러한 노력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미술사에 대한 시민문화를 지켜보면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취지(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 기부를 통해 자연ㆍ문화유산을 영구히 보존한다)를 다시금 일깨워보았습니다. 권진규 선생의 공간은 다행히 내셔널트러스트 단체에 의해 보존되고 있지만, 그 밖의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공간은 아직도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 스스로의 관심과 열정을 통해 우리들 스스로의 정신적 안식처를 보전해 나아가야할 시점이 온 것 같습니다.
강연에 참여했던 부부가 방명록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 는 글귀를 붙이고 아뜰리에를 나섰습니다. 저는 문득 예술의 영원성 안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에 대한 동경을 통해 매순간을 허공에 매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마지막 최열 선생님의 권진규 삶에 대한 코멘트에 대한 제 입장이기도 합니다.
축제 셋째 날(5/25 일)
옛 이야기 들려주기
- 어린이책 시민연대 성북지회와 함께 하는 동화책 읽기 시간
* “어린이책 시민연대 성북지회”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고 즐겁게 동화를 읽어주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임입니다. (사)어린이독서연구회에 소속으로 전국적으로 104개 모임, 4000여명이 넘는 어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책 시민연대 성북지회의 동화읽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짚풀방석에 앉아서 행사준비를 바라보면서 어머니와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모습이 단란한 가족의 모습 같았습니다.
프로그램 전에 저와 즐겁게 놀던 호기심많고 예쁜 남자아이의 어머니께서 먼저 동화 구연을 하셨습니다. 무심히 듣던 중에 어머니의 구연에서 자라날 그 아이의 순수함이 상상이 되니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들쑥날쑥 흘러가는 목소리 속에서 펼쳐지는 동화 이야기 속에 아이들은 이내 흠뻑 젖어들어 동화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어머니는 또 어떻게 이야기를 펼쳐 나가실까, “똥벼락”이라는 똥 이야기에 제 스스로 파묵히게 되었죠. 아이들에게는 조금은 생소할지 모르는 이러한 옛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또 어떠한 새로운 정서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들의 동화 구연에 이어 이번에는 직접 김수현이라는 학생이 나와 친구의 보조를 받아가면서 동화를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친구가 직접 동화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주변 아이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음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못내 부러운 모습들을 감추지 못했습니다.